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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4 09:35

'히어리'이름의 유래

조회 수 88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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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촉촉하게 봄비가 내린다.

세상엔 감사할 일이 많고 많지만 때 맞춰 내려주는 봄비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지 싶다.

봄비가 대지를 적신 뒤 움트는 초록의 생명은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 비 그치고 나면 파란 새싹들이 더 많이 고개를 내밀고 꽃나무들이 다투어 꽃을 피워낼 것이다.

비 때문에 쌀쌀해서 하루 종일 어깨를 움츠리지만 봄이 한 걸음 더 빨리 오리란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봄이 조금 빨리 오는 편이다.

요즘 수목원엔 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희귀식물원의 히어리도 연노랑 수줍은 미소를 살며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정겨운 이름이지만 사실 내게도 히어리라는 꽃이름이 희한하고 낯설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히어리? 외국 꽃도 아닌데 무슨 이름이 그래?

 

히어리는 낙엽 떨기나무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나뭇가지 가득 매달리는 노란색 꽃송이가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1924년 당시 수원농림학교 교수였던 '우에키 호미키'에 의해 학명이 부여되었고 향명은 '송광납판화'다.

처음 발견한 곳이 송광사 부근이고 꽃잎이 밀납처럼 반투명하다 해서 붙여졌다는데

내가 보기엔 꽃잎보다 꽃받침이 밀납처럼 투명한 느낌이다.

히어리라는 독특하고 예쁜 이름은 1966년 이창복 박사가 붙였다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희다라는 뜻의 '허여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희어리 꽃잎이 멀리서 보면 희끗해 보일 수 있다 해도 히어리의 유래라고 하기엔 억지스럽다.

'히어리'와 '허여리'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누군가 지어낸 말이 아닐까 싶다.

 

둘째는 '해여리'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해여리'라는 단어는 어학사전에도 나오지 않지만 유난히 이른 봄 꽃을 피우기 때문에

한 해를 여는 꽃이라는 의미로 '해여리'라고 부르다가 '히어리'로 변했다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은 1월 1일이지만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을 구분한 24절기에서는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본다.

때문에 입춘 전날을 해넘이라고 했다.

입춘인 해넘이가 지나면서 가장 먼처 피기 시작한 꽃이니 해를 여는 꽃이라는 뜻으로 해여리라 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따뜻한 남도에서 입춘 무렵이면 집 부근에도 꽃이 많을텐데 굳이 깊은 산중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희귀종을 콕 집어 해를 여는 꽃으로 불렀다는 건 의문스럽다.

 

셋째는 '시오리'라고 부르다가 '히어리'가 되었다는 설이다.

이동혁의 <한국의 나무 바로 알기, 2014>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십오 리(약 6km)마다 심어 오리나무나 시무나무처럼 거리를 알려주었다 하여 '시오리'라고 부르던 것이 구전되면서

학자에 의해 '히어리'로 기재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희귀수종인 히어리를 이정목으로 심었다는 점이 설득력이 떨어지고,

비교적 긴 거리인 6km마다 나타나는 히어리를 알아보고 거리를 계산한다는 점이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히어리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가 꽃이 피어 있을 때에는 알아보기 쉽지만

꽃이 없을 때 잎이나 열매를 보고 보통 사람이 알아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오리에서 히어리로 발음이 변형되는 과정 또한 비약이 너무 심하다."

 

히어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또 다른 근거는 히어리 복원의 중심에 있었던 임동옥 교수의 수필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발표한 임동옥 교수의 수필집<게들의 잔치>에 실린 '히어리'라는 글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히어리가 자생하는 지역을 다시 찾았다.

순천 지역 청소골 산장 주인은 '시오리(나무)'가 청소골 지역에 많다고 하였다.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승주읍 신전마을 어른들도 '시오리가 골째기에 쌔부렀어. 한 번 올라가 봐'하셨다."

그리고 그는 히어리의 생태를 보고 이렇게 추정했다.

히어리가 "큰 산자락의 주 능선이나 남사면에 분포하지 않고, 골짜기를 따라 북사면에만 분포하므로

마치 시오리 간격마다 출현하는 종으로 알려져 향명으로 '시오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오리는 십리(4km)에 오리(2km)를 더한 약 6km 거리를 의미하는 데,

계족산 아래 청소골지역 히어리는 골짜기를 따라 시오리 정도 떨어져 분포한다."

히어리가 자생하는 지역 주민들이 시오리라고 부르다가 히어리가 되었다는 설이 그나마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히어리의 학명(Corylopsis coreana Uyeki)에는 일본인 학자 우에키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일제시대에 조선의 자생 식물을 찾아내고 연구하면서 가장 많은 학명을 붙인 사람은 나카이 다케노신이라는 식물학자다.

철저하게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의 식물을 찾아내고 연구했던 나카이는

이 땅의 자생식물 학명을 알게 될 때 마다 머리뚜껑 열리게 하는 인물이다.

같은 일본인 식물학자이지만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던 나카이 다케노신과 우에키 호미키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정리를 할 생각이다.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해야지 하면서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그래도 개인적 욕심으로 더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나는 활짝 핀 히어리를 볼 때 마다 가지에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1973년 발표된 토니 올랜도 & 던(Tony Orlando & Dawn)의 히트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3년간 형무소 생활을 하던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연인에게 쓴 편지에

나를 용서한다면 마을 어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는 내용인데

경쾌한 리듬 때문에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부르게 되는 명곡이다.

또 하나 가슴 아픈 기억 세월호의 아이들, 엄마된 입장으로 생각할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제발 살아 돌아오라는,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다는 노란 리본을 우리는 가슴에 달았다.

죽은 아이들은 말이 없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계산 혹은 정략적 유불리를 따지다 보니

어쩌다 노란 리본만 봐도 진저리가 쳐진다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내 마음 속 노란 리본은 언제나 꽃다운 나이에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된

아깝고 안타깝고 불쌍한 내 새끼들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눈곱만큼도 변질되지 않았다.

 

 

  • profile
    박하 2021.03.25 10:02

    아침햇살이 창을통해 부드럽게 들어옵니다
    책읽기 좋은시간, 소화 님의 글을 읽으며 커피를 내려옵니다
    어제까지 읽던 jyp의 "무엇을 위해 살죠"를 잠시 물리고
    히어리의 유래를 쭈욱 읽어내려 갑니다
    아.. 아하.. 그럴것도?.. 고개를 끄덕여도 봅니다
    첫째에도 약간 그럴수도 있겠다입니다
    역광에 비춰진 히어리를 생각하면 희다의 허여리ㅎ
    둘째도.. 세째도.. 조금씩은 일리가ㅎ
    한자한자 타이핑하며 올리셨을 글
    열정과 사랑에 넙죽
    이제 히어리를 만나면 소화 님 부터 생각날 듯합니다
    다른길을 걸었던 일본인 두학자의 이야기도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아주 예전 읽었던 노란손수건의..
    버스안에서 떡갈나무에 온통 걸린 노란리본을 바라보고
    주인공 만큼이나 감동했던.. ㅠ
    또 노란리본만 보면 진저리 친다는 사람들도..
    수장된 안타까운 영혼들도.. ㅠ
    히어리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소화 님으로 모처럼 여유를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쵝오!!!!!!!요^^

  • ?
    小花 2021.03.25 13:06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역시 박하님은 예나 지금이나 박하님이십니다. ㅎ
    저는 출근에 쫒겨 허겁지겁 숭늉 마시듯 커피를 마시거든요.

    우리 고유 식물의 향명은 대부분
    누가 언제 어떻게 지었는지 정확한 설이 없어요.
    마타리처럼 어원이 확식한 꽃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게는 민간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지요.

    카메라도, 사람도 늙고 녹슬다 보니 사진은 마땅치 않고 해서
    그나마 문법은 제대로 맞출 수 있다 싶은 글을 올려 봤습니다. ~^^
  • profile
    박하 2021.03.25 13:38
    소화 님의 글은 빙의?를 일으킬만큼
    매력에 빠진답니다
    잔잔하면서도 메세지가 있는..
    시간나실 때마다 찾아와주세요
    기다립니다^^

    녹슬다니요.. 아직도 청춘이실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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