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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김낙호 2009.06.01 20:15 조회 수 : 3665 추천:2

 

 

 

대모산 구룡산 종주를 마치고 양재동 시민의 숲으로 가는 길에 자주빛 감자꽃이 피어있는

감자밭을 지났다.

대게는 하얀색 꽃을 피우는데 품종이 다른 건가?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떠오르는 추억이 있어 홀로 고소를 머금었다.

 

방학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가 깨복장이 동무들과 어울려 지내던 어느 여름 밤,감자서리를

해다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논둑아래에 솥단지 걸어놓고 불을 지피는데 땔감이 모자랐다.

 

그믐께 였는지 달빛도 없는 깜깜한 밤에 동네로 살금살금 들어가 채소밭에 둘러친 울타리

를 조금 뜯어 갈 양으로 소리죽여 조심조심 마른 나무가지를 뜯어 내고 있는데 갑자기

함께 갔던 동무가 파다닥 뛰쳐 달아났다.

 

깜짝놀라 둘러보니 2-30m쯤 떨어진 곳에 누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이 희끄름하게 보였다.

더 볼것이 무에 있나,잽싸게 뛰어 동무가 달아난 반대방향을 잡고 달아났다.

달아날 때는 분산해서 뛰어야 함은 어린 우리에게도 상식,감자서리본부와는 다른 방향을

잡고 뛰는데...

                                                        

얼라리?

하필이면 추적자가 나를 목표로하고 쫓아왔다.

그 채소밭은 나의 당숙네 밭이었으니 추적자는 당숙 아니면 재종형일께 분명했다.

 

서울까지 유학을 가 공부하는 내가 도둑으로 잡혔을 때의 그 창피감, 일찍이 홀로되어 자식

들 서울 유학 보내느라 시골집에서 농사일에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성난 얼굴 모습,손가락

질 하며 놀려 댈 동무들의 모습등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달리기라면 한달리기 하던 나였기에 곧 추적자를 따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끈질기게 쫓아왔다.

 

당숙이라면 벌써 포기했을 텐데 아마 재종형인가 보다

 

재종형은 나보다 두살 위인데 달리기는 별로 못하는 축에 속하니 조금만 더 뛰면 포기하겠지.

동네 앞 염전까지 갔는데도 계속 따라왔다.

어? 뭐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죽어라 달릴 수 밖에.

점점 숨은 차 오르고 그 넓은 염전을 이쪽 저쪽으로 한참 뛰었으니 십리도 더뛰었을 때 쯤,

 

"ㅇㅇ야! 그만 뛰자. 아무도 안 따라 와."

 

추적자는 땔감구하기 작전에 가담코자 뒤늦게 쫓아온 동무였던 것이다.

우리가 튀니까 그 동무도 놀래서 덩달아 튀었단다.

 

이 친구는 초딩 때 반에서 꼴찌하던 친군데 머리가 나쁘니 튈 때는 흩어져라 하는 기본도

지킬 줄 몰랐다.

 

"얌마! 넌 기본도 모르냐?"

 

"내가 뭘!"

 

옥신각신하며 솥단지가 있는 본부(?)로 돌아 왔을 땐 이미 감자는 다 먹고 한톨도 남아있

지 않았다.

 

하늘엔 별이 총총, 개구리 울음소리만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