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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만호 한석봉,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중기 3대 서예가이자 문인인 봉래 양사언의 시조 구절이 생각납니다.

몇년만에 찾아온 강추위 운운하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메스컴들의 호들갑에 지레 겁을 먹고 칭구들이 이 핑게 저 핑게 소양댐 상고대 출사를

회피하드라구요.

이 날 최저기온이 서울이 -14도 춘천이 -17도를 기록한다 하니 소양댐의 기온은 체감온도로 -20도를 밑돌겠지요.

 

"하필이면 제일 춥다는 날 그것도 최저기온대인 해뜰무렵에 사진은 뭔 사진?" 마눌님이 궁시렁댑니다.

"겨울사진을 추운 날 담아야지 꽃피는 봄날처럼 따뜻한 날 담으면 겨울맛이 담기나?"

 

허지만 현장에 도착해 사방에서 모여든 많은 진사님들 틈에 섞여 무럭 무럭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와 강둑 나뭇가지에 맺히는 순백색의

고대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셔터를 누르다보니 손이 약간 시린 것 외에는 견딜만 했습니다.

추위가 두려워 포기했더라면 올라보지도 않고 뫼(山)만 높다 하는 꼴이 될 뻔 했습니다.

 

온실까스 덕분인지 온난화현상 때문인지 요즘의 겨울은 옛날(1960년대 초)에 비하면 겨울도 아닙니다.

서울의 기온이 -20도는 보통이었고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지치기 하는 게 큰 재밋거리 였었지요.

난방시설이나 좋았습니까? 아침신문에는  연탄까스 중독사망 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눈에 띠곤 했지요.

당시의 화장실은 거의가 옥외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었어요.

강추위가 계속되면 자취집 화장실의 오물이 꽁 꽁 얼어붙어 퍼내질 못하고 그 위에 계속 볼 일을 보다보니 피라밑형으로 얼어붙은 오물덩이

꼭지점이 지상으로 솟아  아침이면 2km쯤 떨어진 공중화장실로 뛰어가 줄을 서곤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런 추위도 견뎠는데 까짓 요즘 추위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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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얀색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가 햇빛을 받아 은백색으로 반짝이는 광경에 너도 나도 웃음띤 낯빛으로 감탄성을 쏟아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표정의 얼굴들이 모두가 선인(善人)이 된 모습입니다.

문득 언제적의 교과서인지 뚜렷하진 않으나 학창시절 공부했던 김진섭님의 백설부(白雪賦)가 떠 오릅니다.

 

<전략>어제까지도 침울한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이, 이제는 백설의 은총(恩寵)에 의하여 문뜩 빛나고 번쩍이고 약동하고 웃음

치기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풀 포기,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풍만한 백화(百花)를 달고 있음을 물론이요, 괴벗은 전야

(田野)는성자의 영지(領地)가 되고, 공허한 정원은 아름다운 선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은 성화(聖化)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한 가운데 소생되는데, 그 질서, 그 정밀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며 영원의 해조

(諧調)대하여 말한다. 이 때 우리의 회의(懷疑)는 사라지고, 우리의 두 눈은 빛나며, 우리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무엇을 느끼면서,

 위에서 온축복을 향해서 오직 감사와 찬탄을 노래할뿐이다.<후략>

 

조금 어려운 낱말들로 엮어지기는 했어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하얗게 색칠하여 모든 어두운 생각과 일들이 사라지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헛소리를 주절거리 것을 보니 영하의 날씨에 몇 차례 설경출사를 다녀 온 후 머리가 살짝 얼어붙은 모양입니다.

아직도 동장군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습니다.

너무 움추리지 말고 겨울의 진면목을 찾아 함 움직여보십시요. 후회하지 않을 겝니다.

 

                                                                                            2012.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