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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김낙호 2011.01.04 08:21 조회 수 : 3986 추천:1

"honey~ honey baby ♪ honey~ honey baby ♪♬"

늦은 밤에 왠 헨드 폰이야?

"내일 아침 해돋이 보러 남한산성에 가자."

사실 아파트 25층이 우리집이니 매일 아침 앞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지내는 처지이기에 산 봉우리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위해 이 엄동 새벽에 별도의 장소로 간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사진을 시작해 한참 미쳐가는 친구의 청을 물리칠만큼 마음이 모질지가 못한 게 흠이다.

 

수어장대에는 사람들이 북적일 것 같아 망경사 앞마당에 parking을 하고 동장대(터)로 오르기로 했다.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모두가 남다른 각오로 신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일 것으로 여겨져 이를 보는 내 마음이 흐믓했다.

쥐를 넣고 빵을 구워 경쟁 제빵업자를 음해하려 했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 사회의 암울한 앞날을 보는 것 같아

불편했던 마음이 다소 풀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눈 쌓인 미끄러운 길을 힘든 줄 모르고 올라 적당한 장소를 물색, 곱은 손 호 호 불어

가며 삼각대를 설치하고 300mm 망원렌즈를 장착하여 준비를 마쳤을 때가 6시 50분, 해뜨는 시각까지는 아직도

40여분이나 남았다.

 

DSC_1248.jpg

새해 첫날 7시 12분

 

동쪽 하늘이 점차 밝아오는데 어째 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분명히 어제 밤 T.V에서 동해안과 남해안은 구름낀 날씨가 될 것이고 서울 경기지방에서는 둥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했는데 왠 구름?

정작 일출시간이 되자 동쪽하늘이 검은구름으로 덮혀버렸다.

주섬 주섬 삼각대를 걷고 있는데 핸드 폰이 울린다.

"춥지 않아요? 그리고 사진은 잘 담았고?"

동쪽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걸 거실에서 환히 보고 있을테니 약을 올리는 전화가 분명하다.

"오늘도 꽝이야."

"ㅎㅎㅎ 당신 요즘 전국을 돌면서 삽질이네? ㅎㅎㅎ"

뭐? 삽질? 그래 삽질하고 돌아다녔지.

올 겨울 일출사진을 담기위해 찾아 간 여수 돌산도에서도 강원도 고성 옵바위에서도 울산 진하 해수욕장에서도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까지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런 놀림 받을만도 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이르기위한 준비와 과정이 즐거움속에서 이루어졌으니 굳이 삽질이라는 놀림을 받을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DSC_1276.jpg

새해 첫날 8시 5분

 

찬 바람 몰아치는 눈 덮힌 성곽을 바라보노라니 300여년 전 병자호란 당시 추위와 배고픔 속에 성곽을 지키던  병사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

힘 없는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하는 고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작금의 대북관계에 임한 중국의

애매한 태도에서  우리는 경계의 끈을 늦추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차직하면 당시의  화냥년(還鄕女)과 호로(胡虜)자식이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과 이들이 뱃속에 가지고 온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중인들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아야하고 지금도 못된 삶의 대명사로 쓰이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나는 요즈음도 연개소문이나 대조영등 당나라 군사를 시원하게 때려부수는 T.V 연속극을 열심히 본다.

 

                                                                                             2011년 1월 1일

 

**삽질은 “쓸모 없는 일을 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한국의 관용어이다. 그 기원은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상급자들이

졸병에게 쓸모 없는 일을 ‘규율’을 세우려는 의도로 시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비속어에 속하니 쓰지않는 것이

좋다.

 

** 병자년 섣달에 시작된 전쟁은 이듬에 정월 그믐 인조가 삼전도에서 언땅에 무릎을 꿇고 청태조에게 항복을 함으로써

끝이 났다.이 때 청나라에 잡혀간 포로(대부분이 아녀자)가 50만명이나 되었다.

나라에서는 이들을 데려올 돈이 없자 개인들이 사재를 털어 이들을 대려왔는데 이들 환향녀가 화냥년으로불렸고 이들이

뱃속에 가지고 온 아이들이 오랑케국 포로의 자식이라하여 호로자식이라 불렸다.

환향녀나 호로자식들은 멸시의 대상이 아닌 피해자들이다.그러므로 국가에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했다.
왕이 평소에 국가의 안보를 튼튼히 하지 못했고, 또한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여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고.

전쟁이 나자 왕 밑에 신하들은 왕을 홀로 두고 도망가기 바빴고 또한 남자들이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결국 나약한

여성들만 끌려가서 청군들의 노리개가 되어 처참한 노예생활을 하다 돌아왔는데 조선에서는 전쟁에 대해 책임지는

자가 없이 모든 것을 불쌍한 여자들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운 꼴이 되고 말았다.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다.

 

대우 합창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