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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김낙호 2009.10.09 09:02 조회 수 : 3123 추천:4

맛만 본 지리산둘레길 걷기 여행

 

이상하다?

산 중 오르막 오솔길 커다란 바위를 돌아서자 길이 좁아지며 본격적인 등산길로 접어든다

5분쯤을 경사도가 높은 너덜길을 헉헉대며 오르며 주변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왼편 비탈 저 아래쪽으로 깊숙한 계곡이 형성돼 커다란 개울이 흐르고 멀리 올려보이는

산줄기가  서슬이 파래보이는 것이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지리산 둘레길은 분명 아님이

틀림없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잡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뒤돌아 내려가 길 표지판을 찾아 길을

바로 잡아야 할 것 같다.

해찰없이 정신 바짝차려 걸어야지,임도변에 왼쪽으로 내려서는 작은 길로 안내하는 표지판

을 못보고 넓은 길로 내쳐 걷는 바람에 지리산 서북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덕두봉(1,115m)

자락을 오르는 등산로로 들어서 버렸나 보다.

하지만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서두름 없이 여유로운 길을 걷고자 나선 길이니 한 시간 정도

의 알바(산행시 길을 잘못잡아 헤매는 일) 쯤이야 이 번 여행길의 추억거리로 갈무리하고

표지판 따라 길을 잡고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걷는다.

 

 

시나부로 높아만 가는 파란 하늘을 올려보며 어디든 그냥 떠나고픈 마음에 애만 태웠다.

허나 마음 뿐 지난 연말 어느 날 허락도 없이 내 몸안에 살림을 차린 불법세입자를 몰아내

느라 소모한 체력의 회복이 더디어 지난 달 하순 갑장 친구들의 2박3일짜리 지리산 주능선

종주산행에도 따라 나서지를 못했다.

어느 신문에서 지리산둘레길 걷기여행 이라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옳다꾸나 꿩 대신 닭이

야,하며 마음을 굳혔다.

서점에 들러 어느 여행마니아가 본인이 걸었던 기행문과 자세한 안내를 소개한 지리산둘레

길 걷기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샀다.

지리산 산자락을 빙 돌아 마을을 연결하는 약 800리 둘레길을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2008년

부터 시작하여 이미 북쪽자락 약 200리길이 열려 트래킹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

이란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에 안내쎈터가 세워져 있고 서쪽으로 운봉, 주천까지 그리고 동쪽으로

함양군을 거쳐 산청군 수철까지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가 아닌 강변뚝길,마을길,숲속오솔

길,논밭두렁길등 꼬불꼬불한 옛길을 복원한 것이다.

그 중 한 구간인 인월(전북 남원시)에서 금계(경남 함양군)까지 19.3km를 걸어보기로 계획

을 세웠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대중교통수단으로 남원 거쳐 인월까지 와서 지리산둘레길 안내쎈타에

들러 정보수집을 하고 트레킹 도중 만나는 마을에서는 식사할 곳이 없다기에 이른 점심식사

까지 마친 다음 안내표지판 따라 강뚝길을 걷기 시작했다.

잡풀 무성한 둔치에는 송아지를 거느린 암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가을바람에 살랑이

는 뚝방의 은백색 억새풀이 파란 가을하늘과 대비되어 목가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안내소 표지판에 쓰여진 글이 생각난다.

 

모처럼 내 두발로 스스로 나선 길.

살아온 삶 진솔하게 돌아 볼 순간 되고

닥아 올 인생 새로운 포부 키울 소중한 기회 되시길

숲,바람,하늘,구름.....

이 우주 온갖 것이 오직 나와 연결되어

비로소 생명으로 빛나고 있음을 발견 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들

오로지 사랑과 연민 나눠야 할 때임을 깨달으시길.

 

 

강을 끼고 걷던 길이 물러나면 이제는 산길이 다가온다.

재(낮으막한 재라고 말들 하지만 명색이 지리산 자락으로 수림이 우거져 있는 산임)넘어 오

솔길을 느릿한 걸음으로 넘으면 논밭뚝길 지나 마을길,마을과 마을 사이 길이 꾸불꾸불 멀기

도 하다.

마을마다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고 당산나무 그늘 아래에는 오가는 길손에게 쉼터를 제공하기

위함인지 넓다란 평상이 마련되어 있지만 텅 비어 있다.

평일인 관계로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주변의 풍광에 취해 걷다가 행여 길을 잘못들지

않았는지 염려가 되어도 확인 할 방법이 없어 뒤돌아 한 참을 걸어 안내표지판을 확인한 적

도 있다.

또 다시 재를 넘느라 숨을 몰아쉬며 몰랭이에 올라서자 자그마한 주막이 세워져 있다. 

둘레길이 열리면서 재를 넘는 길손을 맞기 위한 판자집 수준이지만 <다랭이 마을 쉼터>라는

예쁜 이름만큼이나 동동주 맛이 일품이었다.

멀리 석양에 반사되어 추수기 벼의 노란색이 더욱 짙게 반짝이는 다랭이 논들이 펼쳐 보이기

에 해넘이 전에 카매라에 담아보고자 걸음을 빨리 하였지만 사진 포인트를 찾지 못하여 아까

운 장면을 놓쳤음이 아쉽다.

<별과 달 펜션>이라 이름 붙힌 민박집의 저녁식사는 이 곳이 맛의 고장 전라도라는 것을 확

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했다.

맞아, 밤하늘의 별들은 저렇게 찬란하게 반짝이는 거야!

 

 

지리산은 옛부터 우리 민족에게 한을 많이 심어 준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를 점령한 왜병들이 충무공에게 바닷길이 막히자 지리산 마을길을 통

해 전라도로 진격을 시도했고 때문에 이를 막고자 하는 많은 의병들의 충혼이 잠든 곳이기

도 하고 가까이는 동학혁명군의 피난처였고 더 가까이는 민족상쟁으로 얼룩진 한국전쟁 전

후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되어 수 많은 억울한 영혼이 떠도는 곳이 되기도 했다.

지질이도 못살던 시절 평야지대에 터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산중으로 들어와 화전을 일구

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다랭이논을 만들어 마을을 이루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한풀이의 대명사 판소리의 발상지가 되었을까.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등구재를 넘어서자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을 위시한

높은 봉우리들이 성큼 가까이 보인다.

들길이나 마을길에서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 노인들 뿐이다.

애써 일군 밭이나 다랭이논에 농사를 짖지 않아 잡초만 우거진 땅이 여기 저기 눈에 띤다.

조상들이 어떻게해서 일군 논밭인데....하며 잠시 가슴아픈 생각도 해봤으나 어찌 생각하

면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지리산 둘레길 마을 주민들도 어둡고 한맺힌 삶에서 벗어나 즐겁고 신명나는 생활

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어쩌면 이미 그러한 생활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등을 하

는 사이에 이 여행의 종착지 금계마을에 도착하였다.

 

 

동서울행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힛치 하이킹으로 마천까지 갔다(3km거리).

마천은 백무동을 거쳐 천왕봉을 오를때나 칠선계곡으로 하산였을 때 거쳤던 지역이라서 눈

에 익은 마을로 낮설지가 않다.

여기서 인월까지 버스로 15분 거리,어제 오후 반 나절과 오늘 오전 반 나절에 걸쳐 에둘러

걸어 온 19.3km의 길이 버스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느낌이 좀 묘하다.

꼭대기로 마냥 올라만 다니며 품어보는 호연지기도 좋지만 높이 솟아 이어있는 산줄기를

바라보며 산 아래 길을 걷는 맛 또한 별미로 느껴졌다.

기회가 닿는대로 지리산둘레길 나머지 구간도 걸어봐야겠고 빨리 몸이 회복되어 지리산 꼭

대기길도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0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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